1. GM(General Motors) 1) 현대 기업의 모태, 영원한 자동차 제국의 탄생과 몰락과 부활

-1904~1920 : GM의 형성기

GM의 역사는 인수합병의 역사이다. 1904년 미국 미시간주 플린트시에서 마차 공장을 운영했던 윌리엄 듀런트는 쓰러져 가는 자동회사인 뷰인’(Buick)을 인수한다. 당시 뷰익의 연간 생산대수는 28대였다. 그러나 듀런트는 4년만에 뷰익을 연산 8,820대를 생산하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의 자동차 회사로 성장시킨다.

이 당시에 6,200대를 생산하던 미국 1위 자동차 업체인 포드를 앞선 것었다. 듀런트는 미시간주 주지사의 손자로 30대 초반에 이미 마차를 팔아 100만 장자가 된 인물이다.

듀란트는 1908년에 올즈 모빌’(Olds Mobile)를 인수하고, 뉴저지에 본사를 설립하고 회사 이름을 제너럴 모터스(GM)으로 바꾼다. 이것은 GM의 출발이다.

듀란트는 1908~1910년까지 모두 25개의 회사를 인수합니다. 대부분 부품업체였지만, 이중에는 고급차 메이커인 캐딜락(1902년에 헨리 릴랜드가 창업)가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무리한 인수는 회사 경영에 심각한 지장을 주게 되었다. 1910년에 모기업인 뷰익이 판매 부진에 빠지게 되고, 자금압박을 받게 된다. 그래서 듀런트는 은행에서 융자를 받는 대신 경영권을 내 놓는다.

 이후 듀런트는 또다른 경주용 자동차 회사인 시보레’(Chevrolet)자동차 회사를 또 창업합니다. 그리고 시보레 자동차에서 생산한 시보레 490’, ‘베이드 그랜’, ‘모얄메일등 대중차들이 엄청난 성공을 구두면서 재기에 성공한다. 그는 시보레의 주식과 GM의 주식을 맞바꿔 1916년 다시 GM의 경영권을 되찾는다.

그러나 그의 투기적인 기질이 되살아나면서 다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1916~1920년 사이 그는 14개의 회사를 또 인수하게 된다. 자신이 GM의 외곽에서 세운 시보레를 다시 인수하는 것을 포함하였다. 그러나 1920년 경제 공황과 함께 GM이 다시 자금난에 빠지면서, 그른 1920년 다시 GM에서 쫓겨나게 된다.

 이후 그는 듀란트 자동차회사를 설립하였지만 대공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1936년 결코 파산하게 된다.

-1920~1950 : GM의 성장과 황금기

듀란트의 뒤를 이어 대주주 피엘 듀폰이 사장을 맡았다가 이어 23년 전문경영인 알프레드 슬론이 사장으로 선출됩니다. 그는 57년까지 GM을 맡아 GM을 세계 1위 자동차회사로 만드는 1등 공신 역할을 합니다. 알프레드 슬론의 모든 계층에 맞는 자동차를 제공한다는 멀티 브랜드 전략으로 포드를 누르고 근 60년간 세계 최고, 세계 최대의 자동차 회사로 성장한다.

슬론은 조직을 정비하고, ‘모델 T’ 이 후 미국 자동차 시장의 50%를 점유한 1위 기업 포드를 따라 잡기 시작한다. 1920 GM의 시장점율은 20%에도 못 미쳤지만, 37년에 42%로 올라 21%로 떨어진 포드를 누르게 된다.

슬론은 오늘날 자동차 산업의 경영 관행을 확립하였다. 포드가 효율성을 강조해 값싼 자동차를 대량 생산해 누구나 차를 갖게 만들자는데 초점을 둔데 반해, GM의 슬론은 자동차 소유자에 차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인간의 라이프 스타일에 깊게 파고든 자동차의 역할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에 따란 GM은 가격, 디자인, 성능 등 다양한 차종을 양산했고, 또 같은 차라도 매년 새 모델이 나오는 관행을 이때부터 수립하였다. “GM에서는 내가 원하는 어떤 차종 살 수 있다것이 GM의 주장이었다.

이 시기에 GM은 영국 복스홀(1925), 독일 오펠(1929), 호주 홀덴(1931) 등을 인수 또는 설립하고, 공산화 이전인 1928년에 중국 상하이에 ‘GM 차이나를 세우고, 일본에는 이미 1907년 오사카에 공장을 세워, 2차 대전 직전까지 일본 최대의 자동차 회사로 남았다. 또 중국에서 2차 대전 전까지 자동차를 생산해 왔습니다.

2차 대전에는 군용 트럭을 생산하고, 전후에 GM은 승용차 생산을 재개하였다. 50~60년대 캐딜락

엘도라도, 뷰익 르세이버, 시보레 코베어 등이 잇따라 히트를 기록하면서 절대 강자로 군림하게 된다.  뒷꽁무니가 마치 제트기 뒤쪽처럼 삐죽하게 치솟은 테일핀으로 유명한 캐딜락 엘도라도 59년에 생산하였다.

-1960~1980 : GM 위기의 구조화

50년대에 어느 정도 전쟁의 후휴증을 극복한 유럽 자동차 회사들이 60년대 들어 미국 시장 점유율을 늘리게 시작하였다. GM은 유럽의 소형차에 대응하여 소형차 생산에 들어 갔지만, 대형차 위주 생산에 치중했던 GM은 소형차에서는 유럽차에 비해 경쟁력이 없었다.

여기에 70년대에 유연생산 방식으로 무장한 일본 자동차 업체들의 값싸고 품질 좋은 일본 소형차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오일쇼코가 1973년에 일어나서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GM은 올펠 카데트’, 이수즈(일본)와 새한자동차(한국)합작의 제미니’, GM의 시베트 등 소형차를 잇달아 시장에 내 놓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에 따른 여파로 1980 GM은 약 76천만 달러의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는 등 창립 이후 최대 위기를 맞게 된다.

- 1980~1992 : GM의 조정기

1980년 최고 경영자에 오른 로저 스미스는 구조조정에 들어갑니다. 미국 내 공장의 15%에 해당하는 20여 곳의 공장을 폐쇄하고, 종업원 1/4에 해당하는 16명을 해고한다. 그리고 1986년부터 2년 공장 11곳을 폐쇄하고, 3만 명의 종업원을 해고하는 2차 구조조정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89 42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하며 구조조정 10년 만에 회사 경영 개선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처럼 보였다. 로저 스미스가 실시한 GM의 구조조정에 대한 영화는 마이클 무어 감독의 “Roger and me” 보면 알 수가 있다. 이 영화에서 로스 스미스가 실시한 무자비한 구조 조정으로 인하여 디트로이트 초토화 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이 영화로 인해 마이클 무어 감독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회사 직원들에 대한 무자비한 해고와 비용절감으로 인해 적자를 흑자로 만들었지만, 1983년의 43%였던 GM의 미국시장 점유율이 1990년에는 33%대로 떨어졌습니다. 이 후 시장 점유율은 유럽, 일본 및 한국차의 진출로 더 이상 회복하지 못했다.

대규모 해고의 여파로 자동차 제작과정에서 품질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것은 소비자들의 GM에 대한 제품 불만족을 나타내게 되었고, 때마침 등장한 일본의 브랜드의 값싸고 품질 좋은 자동차를 더욱 선호하게 되었다. 불행하게도 이때 GM은 직원들을 해고하는 대신에 자동차 공자에 대한 최신의 설비를 대규모로 투자하였으나 자동차에 품질은 올라가지 않았다.

-1992~2001

1992년에 GM 유럽본부의 잭 스미스가 최고 경영자가 됭낟. 잭 스미스는 취임 뒤 자동차 생산과 관련 없는 사업을 모두 매각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확보된 자금을 마켓팅에 집중 투자하였다.

또 미국 시장에서 벗어나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하게 된다. 또 제품개발에는 투자를 아까지 않아 첨단 모델을 잇따라 출시하는 새로운 GM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인력감축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대신 아웃소싱을 효과적으로 활용합니다. 이 과정에서 노조와의 마찰은 불가피하였다.

1990년 초반의 적자행진을 93년에 마감하게 된다. 92 26억 달러 적자에서 93 25억 달러 흑자, 95 69억 달러 흑자로 뒤돌렸다. 하지만 이런 경영 실적 개선은 숫자 놀음으로 인한 실적 개선으로 주로 직원해고, 브랜드 축소, 공장 폐쇄로 인하여 얻어졌다. 여전히 GM 90년대의 SUV 시대의 열풍으로 경제적인 자동차를 개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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