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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트라반트 601(1958~1989), 구동독 서민의 교통수단,자유의 상징,

자동차 모델/해외 자동차 모델

by 자동차 역사가 2012. 7. 1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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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트라반트(Trabant) 601(1958~1989), 구동독 서민의 교통수단,자유의 상징, 

1989 11 9베른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독 서독간의 국경이 열렸다. 이 역사적인 사건에 바로 동독에서 자유의 세계로 탈출하는 발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동독의 대표 차종 트라반트이다. 트란반트 601은 독일민주공화국에서 생산된 두 대의 자동차 가운데 하나였다. 나머지 하나는 VEB 아우토모빌 베르크 아이제나크에 의해 제작된 바르트부트크였다. 최초의 트라반트는 1957년 가을 AWZ P-70 츠비카우에서 생산되었다. 트라반트는 1958년 가을 츠비카우 공장에서 정규적인 생산에 들어갔는데 1904년에 설립된 이 공장은 제2차 세계대전 훨씬 전에 호르히(Horch),아우디, 반더러를 만든 곳이다.

1949년부터 1956년까지 IFA F8 F9(DKW 모델에서 유래) 1957년부터 1959년까지는 대형차 호르히 P240을 만든 경험이 있는 VEB 아우토모빌 사크센링(Sachsenring)은 그때부터 유명한 트라반트 개발에 전념하였다.

1. 트라반트의 제원

트라반트는 길이가 3.36m로 이루어진 소형 세단이었다. 플라스틱 합성소재로 만들어진 차체는 마무리가 상당히 허술하였다. 이 차는 배기량 500cc 2싸이클식 2기통 엔진에 의해 움직이는 전륜 구동이었다. 이 차의 출력은 처음에는 3,750rpm에서 18마력으로 고정되었으나 1960 33,900rpm에서 20마력으로 높여졌다. 그때부터 트라반트는 ‘500’이라는 조회번호를 가지게 되었고, 최고 속력은 95km/h였다. 트라반트의 특징은 이러한 경량 플라스틱 차체 외에도, 타코미터 대신 공기 흡입량을 색상으로 표시하는 게이지가 계기판에 장착되어 있어 이를 기준으로 운전자가 변속을 하도록 하였고, 변속기는 칼럼식 4단 수동 변속기를 장착하여 좁은 내부 공간의 활용성을 높였다. 트라반트는 차체가 부식에 강하고 가벼우며, 구조가 간단하여 수리가 쉬운 장점이 있었던 반면, 2행정 엔진의 특성상 휘발유에 윤활유를 섞어 태우도록 되어 있어 매연이 심하고, 공랭식 엔진이어서 장거리 주행시 자주 쉬어 주어야 하며, 플라스틱 차체 특성상 사고시 복원이 어렵고 탑승자의 안전에 치명적이며 재활용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또한 낮은 엔진 출력의 한계로 제원상의 최고 시속은 123km였으나 실제로 40~60km 이상의 속력을 내기는 힘들었다.

 

2. 트라반트의 발전

1960 2월 라이프치히 박람회에서 사크센링 공장은 새로이 변형된 차체, 즉 콤비라는 이름의 문 두 개짜라 소형 라이트밴을 도입했다.

1963 3월 트라반트 500 600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배기량은 595cc로 올라갔고 출력은 23hp로 아주 조금 높아졌다. 1964 3 600형에서 601형으로 넘어가면서 또 한 번 변화가 일어났다. 엔진은 같았다. 뒤쪽의 꼬리날개는 더 튀어나왔고 붉은등이 차체에 통합되었다. 전면은 더 각진 형태로 되었고, 지붕은 유리로 이루어진 면을 더 늘리는 새로운 디자인을 내세웠다. 동독 경찰을 위해서 덮개를 씌우고 문을 없앤 일종의 지프차 형태의 자동차를 생산하였다. 훗날 이 모델은 트람프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1965 3월부터 히코마트라는 이름의 자동 클러치가 옵션으로 제공된다. 즈비카우 생산 라인은 1990년 폭스바겐에게 넘어간다. 서독 기업 폭스바겐은 트란반트를 일정 기간 계속 생산하였다. 폭스바겐은 4싸이클식 4기통 엔진(1,043cc×40마력)을 장착하고 디스크 브레이크를 앞바퀴에 장착하였다.

306,099번째이자 마지막 트라반트는 1991 4 29일을 끝으로 마지막 생산을 하였다.

 

참고 자료 1. 매혹의 클래식카(시공사)

          2.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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