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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피아트 500 토플리노(1936~1948), 이태리의 미키마우스 자동차,

자동차 모델/해외 자동차 모델

by 자동차 역사가 2012. 6. 26.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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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자동차, 이태리의 미키마우스 자동차, 피아트 500 토플리노(1936~1948)

피아트의 소유자인 상원의원 조반니 아그넬리가 엔지니어 단테 지아코사를 시켜 피아트 500 토플리노를 만들게 하였다. 그 개발 조건은 5,000리라에 팔 수 있는 작고 경제적인 차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이전에 피아트는 대중적인 자동차 분야에서 상당한 경험을 축적하고 있었다. ‘509’(1925~1929)‘508 발릴라’(1932년 출시) 모델은 실용적인 자동차에 근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진정한 경차의 탄생은 ’500’과 함께 이루어졌다.

 

1. 피아트 500의 개발

 토리노 이공과대학을 졸업한 단테 지아코사(Dante Giacosa)는 파아트사에 들어오기 전에 1929년에 스파사에서 디자이너로 첫발을 내디었다(1928). 1935년 안토니오 페시아가 주도하는 자동차 연구팀의 실장으로 승진한다(1946년에는 그의 뒤를 이어 기술부장이 된다). ‘제로 A’(300의 코드명) 프로젝트를 구상하기 위기 위해 지아코사는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였다. 차체는 두 개의 세로 프레임으로 제작되었고, 엔진을 앞쪽 차축 앞에 달고 냉각기는 엔진 뒤로 옮겨놓았다. 앞바퀴는 독립현가 장치로 구성되어 현가장치는 겹판 스프링을 설치하였다.. 뒤차죽은 세로로 설치된 겹판 스프링으로 구성되었다.

 

2. 피아트 500의 탄생

피아트 500은 둥글고 호감 가는 스타일에 1929년부터 파아트사에서 차체기술실을 이끌던 로돌포셰퍼 팀이 정한 것이었다. 셰퍼는 소형차 500을 디자인할 때 1935 11월 밀라노에 첫 출시되어 대중을 매료시킨 6기통 엔진의 1500의 보디라인에서 영감을 얻었다. 둥근 형태, 불록한 그릴을 그대로 모방하였다. 500 1936 6 15일 공식적인 첫 선을 보인다. 공 언론과 대중이 토플리노란느 별명을 붙인다. 토폴리노는 미키 마우스의 이탈리아 이름이다.

 

3. 피아토 500의 제원

길이가 3.22m임에도 불구하고 피아트 500은 두 사람을 태울 수 있었다. 높은 밀도에도 불구하고 이 차는 공기역학적인 면에서 매우 정교하게 개발된 자동차로 평균 60km로 주행 할 때 100km에 연료를 5리터 소모하여 아주 경제적인 자동차이다. 배기량 569cc 엔진을 단 피아트 500은 대량생산 된 차들 가운데 시장에서 가장 작은 차였다. 500 13마력에 최고 속도는 85km로 제한되었다. 지금으로 보면 초기 자동차 시대의 이탈리아의 티코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토폴리노는 도시와 시골에 다 어울리는 자동차로 8,900리라에 팔았다.

 

4. 피아트 500의 발전

1948년 생의 말로에 500은 위쪽 밸브 엔진(570cc 17마력)을 장착했고, 그 뒤 1949년에는 더 화려한 모습의 변경된 500C가 되었다. 피아트 500의 특허권을 획득하여 생카사에 의해 생카생크(5)’라는 이름으로 프랑스에서도 생산되었다.

 

5. 피아트 500의 판매

전후복구가 마무리되지 않은 1950년에는 1년에 10만여 대밖에 생산할 수 없었지만, 500의 인기에 힘입어 1965년에는 1년에 100만 대가 넘는 차를 생산하였다. 물론 500 1960년대 초반 이태리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였다. 1972년 후속 모델인 피아트 126이 나오기까지 18년 동안 3893,294대의 피아트 500이 생산되었고, 19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반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이태리와 유럽인들은 피아트 500은 하나의 자동차 문화 주류로 자리 잡았다.

 

참고 자료 : 1. 매혹의 클래식카(시공사)

           2. 위키피디아

참고 자료 : 1. 매혹의 클래식카(시공사)

                2.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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