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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터커 터페도(Tucker Torpedo),19148), 저주 받은 걸작

자동차 모델/해외 자동차 모델

by 자동차 역사가 2012. 7. 1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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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터커 터페도(Tucker Torpedo),1948), 저주 받은 걸작

프레스턴 토마스 터거의 인생은 자동차 역사에서 특이하다. 1940년 그는 무기를 만들기 위해 미시건주의 입실러티에 터커 항공사를 설립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1946년 터커는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하여 터커사를 설립한다. 당시 자동차 산업은 ‘Big 3’ 다시 말해 제널럴 모터스, 포드, 클라이슬러가 주름 잡고 있었다. 이런 거대 기업들 중에 독립적인 제조사들이 스타일 면에서 매우 두드러진 독창적인 제품들을 제시함으로써 한 자리를 차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내쉬, 허드슨, 윌리스-오버랜드, 스터드베이커, 패커드 등이 두드러졌다. 

1. 터커 토페도의 시작

제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정부는 ‘전쟁 유산 관리’를 통해 폐쇄된 군 시설들을 빌려주거나 싼 가력에 파는 형식으로 개인들에게 맡기게 된다. 그리하여 터커는 닷지(Dodge)가 하늘의 요새 ‘B29’의 엔진을 생산하던 부지를 물려 받는다. 그때 프레스턴 토마스는 미국에서 가장 독창인적인 디자인 중의 하나인 알렉스 사란토스 트레뮬리스와 관계를 맺게 된다. 1914년 그리스에서 태어나 알렉스 트레뮬리스는 1933년 뒤센버그사에서 스타일리스트로 데뷔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코드를 맡은 고든 뷰릭의 뒤를 이어 그곳의 스타일 팀장이 된다.

2. 터커 토페도의 구성

프레스턴 터커와  알렉스 트레뮬리스는 둘 다 도전을 좋아했다. 터커는 차의 뒤쪽에 엔진을 장착하는 편을 택하였는데 그것은 미국에서는 특히 대형 리무진 자동차(축간 거리가 3.25m로 결정되었다)에서는 유례 없는 제조 방식이었다. 유럽에서는 체코 기업인 타트라가 홀로 이 기술을 고집하였다. 터커의 엔진은 공기에 의해 냉각되는 6기통 엔진으로서 배기량 5.5 리터에 166 마력을 냈다.

3. 터커 토페도의 디자인

미학적인 측면에서 터커(세단형 자동차임에도 ‘토페도’(경주용 자동차)’라는 이상한 별명)자동차는 에사롭지 않은 비례, 유난히 낮은 실루엣, 날씬한 후면, 중앙에 박힌 라이트이 외눈박이의 시선, 범퍼 안에 자리잡은 환기구 등으로 동시대의 자동차와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4. 터커 토페도의 성공과 실패

1947년 6월 19일 프레스터 터커는 자신의 걸작을 구경하러 오라고 5천명을 초대하였다 그것은 대 성공을 거두었다. 사원 수가 몇 달 만에 삼백명에서 이천이백 명으로 급증했다. 터커는 무성한 전망과 예측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었다.

‘대량 생산된’ 최초의 자동차는 1948년 3월 출고됐다. 하지만 상황은 극적이었다. 이 때 회사의 재정 상태는 위태로웠다. 1948년 8월 시작한 지 고작 다섯 달 만에, 그러니까 51번째 차가 세상에 나온 뒤 생산은 중지되었다.

애초에 프레스턴은 이 차를 매일 천 대씩 만들어 낼 계획었다. 그는 공장을 다고 직원들을 해고하였다. 이 모험에 2천6백만 달러를 투자한 주주들과 판매권자들이 그를 고소하는 동안 터커사는 법적 청산에 들어갔다. 쓸쓸한 명차의 최후이다. 전체 51대를 생산했으나 1대는 시작차이고 50대는 시판용이었으나 지금은 단 43대만이 남아있다. 과연 불후의 명작과 희소성을 겸비한 모델이다.


참고 자료 1. 매혹의 클래식카(시공사)

              2.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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